Plus Essay - 조직을 이끌어가려면
사회저명 인사가 기고한 글입니다.
글_ 최석식
상지영서대학교 총장(前 과학기술부 차관)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과학기술부 차관과 한국과학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나고 몇몇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던 필자에게 2011년 2월 채영복 전 장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상지학원의 전문대학을 맡아달라는 당부였다.
당시 상지영서대학교는 정부와 구조조정 약속을 하고 이행단계에 있는 경영부실대학이었다. 필자가 상지영서대학교 총장에 취임하면서 준비한 것은 몇 장의 대학발전 구상과 3천원짜리 청소집게 하나가 전부였다.
필자는 교직원들과의 면담과 설문조사를 통해 대학의 문제점을 파악했다. 필자가 찾아낸 가장 큰 문제는 ‘패배의식’과 ‘자신감 결여’였다.
일부 교직원들은 이제 막 취임한 총장에게 상지대학교(4년제)와 통합하자고 요청까지 했다. 막막하고 답답했다.
필자는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대학이 적립금을 100억원 가량 보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돈을 손에 쥔 채 대학시설이 낡게 두었고 2010년에는 경영부실 판정까지 받았던 것이다.
필자는 교직원들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학의 비전과 발전목표를 제시했다. 대학의 비전으로 ‘명품 전문인력의 산실’을 내걸었고, 대학의 발전목표로는 2012년 전국 100위, 2015년 50위를 제시했다.
그리고 교직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진솔한 대화를 시도했다. 대화를 통해 필자의 자신감과 대학의 가능성을 설명했다. 마침내 대학 발전을 위해 그들의 적립금을 사용해도 좋다는 동의를 전체교수회의에서 얻어냈다. 일단 시작은 성공이었다.
필자는 그 돈으로 학과, 인력 및 교육환경의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특히 교육환경 구조조정을 위해서 20억원을 투입하여 캠퍼스를 공원처럼, 카페처럼 뜯어고쳤다.
이와 동시에 제도와 관행을 크게 개선했다.
첫째, 학생→교수→직원의 내부고객 체계를 마련했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관점에서 학생을 맨 정점에 자리매김하고, 교수들은 학생들에 의해 평가받고 직원들은 교수들에 의해 평가받는 시스템이었다.
매학기 강의평가에서 평균 80점에 미달하는 교수의 명단을 공개하고, 과목별로 2회 연속 70점 미만의 강의평가를 받은 교수에 대해서는 그 과목을 3년간 강의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직원들은 매년 팀 단위로 교수들로부터 만족도 평가를 받고, 85점 이상의 팀에 소속된 직원에게는 기본급 연액의 10%를 포상금으로 지급했다.
이와 더불어 총장에게 주어졌던 교수업적 평가점수 10점을 학생들의 강의평가 점수에 내주었고, 직원들에 대한 근무성적 평정점수(6급 이상은 50점)에는 교수들의 만족도평가 점수를 그대로 반영했다.
둘째, 신입생 충원율, 재학생충원율 및 졸업생 취업률에 대한 연도별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학과에는 적지 않은 규모의 포상금을 지급했다.
셋째, 취임초기에 산학협력처를 신설하여 협약업체 수를 2014년 2월말까지 672개사로 늘렸다.
넷째, 교수가 가르치고 싶은 과목이 아니라 고객 기업에서 원하는 과목을 가르치도록 산업체 맞춤형 주문식 교육과정을 도입했다.
다섯째, 학생들의 등록금을 내리고 장학금을 올려 2013년에는 2011년 대비 47.1%인 ‘반값 이하 등록금’을 실현했다.
여섯째, 필자도 살을 깎았다. 총장차량 전담기사를 없애고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총장의 업무추진비(판공비)를 25% 삭감했다.
일곱째, 필자도 직접 캠퍼스를 청소했다. 총장에 취임하면서 준비해 온 청소집게를 들고 틈 나는 대로 캠퍼스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주워 다른 손에 들려있는 봉투에 담았다.
처음에는 교직원들이 놀랐다. 만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쯤 지나자 변화가 생겼다. 우선 청소하시는 분들이 청소를 더 열심히 했다. 교직원들도 거들었다. 학생들도 쓰레기를 덜 버렸다.
여덟째, 필자는 각 학과를 찾아가 신입생 특강과 졸업반 특강을 각각 실시했다. 2014년의 신입생 특강주제는 ‘즐기는 사람이 성공한다’였다. 졸업반 특강의 주제는 성공적인 취업과 아름다운 직장생활이었다.
상지영서대학교가 달라졌다
여러 지표가 좋아졌다. 2011년에 92.2%였던 신입생 충원율이 2012년에는 99.7%로, 2013년과 2014년에는 각각 100%로 올라섰다. 2011년 75.8%였던 재학생 충원율은 2013년에 90.9%로 높아졌다.
졸업생 취업률은 2011년 60.1%에서 2012년에 66.4%로 상승했다가 2013년에는 63.0%로 하강했다. 교수들에 대한 학생들의 강의평가 평균점수는 2011년 1학기의 81.50점에서 2013년 2학기에 89.56점으로 대폭 올랐다.
이런저런 결과는 정부평가 순위로 나타났다. 2010년에 142위, 2011년에 134위였던 상지영서대학교가 2012년에는 42위로, 2013년에는 46위를 차지했다.
2012년 12월에는 정부로부터 경영부실대학 졸업공문을 받았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정부의 교육역량강화사업에 선정되어 총 51억원의 정부보조금을 지원받았다.
숙제는 남아 있지만
필자는 여전히 상지영서대학교 개혁의 숙제를 뼈 속에 담고 살아간다.
첫번째 숙제는 아직 근원적으로 바뀌지 않은 교수들의 자세이다. 그 단적인 증좌가 2013년 취업률로 모습을 드러냈다. 필자가 나름 챙겼는 데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지영서대학교의 종합순위도 미끄러졌던 것이다.
두번째 숙제는 학생들의 불편사항 해결이다. 필자는 대학건물의 여기저기에 ‘학생불편신고함’을 설치해서 학생들의 불편사항을 신속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매주 월요일에 개최되는 교무위원회에서 학생들의 불편사항을 총장이 직접 낭독한 후 해당 교무위원에게 개선을 요구했다. 더 있다. 분기별로 한차례씩 학과대표 간담회를 개최하여 대표학생들의 요구를 직접 듣고 설명하고 개선을 약속했다.
그런 데도 쉽지 않다. 여전히 “좋은 학교, 좋은 학교 하셨는데, 진짜 좋은 학교는 눈에 보이는 것만 꾸미는 게 아니라 재학생들의 의견수렴과 소통이 잘돼야 좋은 학교 아닌가요?”라면서 총장을 책망한다.
이래저래 학생들의 요구사항은 그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이제는 즐거움이 되었다
전문대학은 참 묘한 곳이다. 외부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느끼는 것이 판이하게 다르다. 밖에서 보면 시시한 학생들과 시시한 교수들이 모여 있는 시시한 대학처럼 보일 수 있다. 필자도 그렇게 보았다. 그러나 안에 들어와 보니 크게 달랐다.
전문대학은 서울대학교보다 KAIST보다 학생들에게 해줄 일이 더 많았다. 2년 또는 3년이라는 짧은 기간내에 전공공부는 물론이고, 도전의식과 자신감과 성실성을 심어주는 인성교육도 더 많이 실시해야 되기 때문이다.
정말 교육기관답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 전문대학에 오길 잘했다.
2013년 4월 중순. 어떤 학생이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해온다. “총장님, 총장님 강의듣고 오늘 시험 잘 봤습니다.”
2013년 스승의 날. 몇 명의 학생들이 편지나무 한 그루를 들고 총장실로 들어왔다. “총장님, 저희들의 선물입니다.”
30장이 넘는 편지 잎사귀 중 하나. “요즘 캠퍼스 분위기가 확 달라져서 너무너무 좋습니다. 학생의 의견 하나하나 소중히 하시는 총장님이 멋지고 존경스럽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2013년 가을부터 필자는 취업한 학생들에게 일일이 핸드폰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필자 학생들의 답글이 도착했다. 그중의 하나. “감사합니다. 총장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필자는 오늘도 캠퍼스의 담배꽁초를 줍는다.
즐거운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