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경영인인터뷰

CTO인터뷰 - 두산그룹 기술담당 이현순 부회장

공동작성_
이동기 대표((주)SBP전략경영연구소),
허원경 전문작가(프리랜서)

대담_ 이현순 부회장((주)두산)


Global 기술경쟁을 위한
기업의 혁신과 CTO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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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기술경영자(CTO) 역할의 재조명

21세기의 글로벌 기술경쟁 환경을 보면 ‘역설(Paradox)’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아무리 변화해도 주변 환경이나 경쟁 상대가 더 빠르게 변해 결국에는 상대적으로 뒤쳐지고 마는 ‘붉은 여왕의 역설(Red Queen’s Paradox)’ 처럼, 기업이 변화하지 않거나 기존의 성장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퇴보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기술경쟁 시대 속에 기업의 생존은 ‘혁신(Innovation)’ 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기업의 혁신을 위해서는 최고기술경영자 ‘CTO(Chief Technology Officer)’의 역할이 중요하다.
 
불연속적(Discontinuous) 사업환경 속에서 새로운 사업을 통해 한 단계 앞선 경영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술력은 물론 미래 기술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판단력, 기술의 시장성 파악을 위한 노하우(Know-how)까지 고루 갖춘 CTO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이 시대 최고기술경영자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도전과 생생한 성공 경험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대자동차에서 연구개발총괄본부 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두산에 몸담고 있는 이현순 부회장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엔진의 독자 기술 시대를 열다

“기술이라는 게 아무것도 없더군요. 도면대로 만드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에서의 28년간을 회고하며 처음으로 입을 뗀 이현순 부회장의 말이다.

1980년대 초 미국 유학을 마치고 당시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GM에서 근무하던 이현순 부회장은 자동차 기업으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현대자동차의 故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차세대 독자 엔진 개발을 맡아 달라는 것’.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의 자동차 기술을 도입하여 면허생산(License)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자동차 전문인력이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선진기업에서 도입한 설계도면을 단순 번역하고 똑같이 그리는 작업이 전부였다.

현대자동차 역시 자동차를 생산하고는 있었지만 엔진을 개발하기는커녕 부품의 기능과 성능, 설계 원리를 파악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으며 선도기업(당시 미쓰비시 자동차)으로부터 라이센싱을 받은 기술도 모두 핵심기술 보다 1~2세대 뒤쳐진 것들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열악한 국내 상황 속에서 과연 자체 기술로 엔진을 개발하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이 부회장은 안정된 생활과 새로운 도전을 사이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결국 몇 달 뒤, 고민 끝에 자동차 산업발전에 기여할 부푼 꿈을 안고 1984년 현대자동차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 부회장의 큰 결심은 부친(故 이경환)의 조언과 ‘무엇이 더 보람되고 의미 있는 일일까?’라는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고 한다.

보수는 GM 때와 비교하면 고작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고 열악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 부회장은 가장 먼저 내부 기술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술혁신을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엔진기술을 포함해 자동차에 대한 전반적 기술력이 낙후되어 있는 당시 상황에서 주력기술 개발의 초점을 현재와 과거 중 어디에 둘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재 기술을 따라잡는 것에 목표를 두면 ‘지금 시작해도 결국 다른 선진 기업이 30년 전에 개발했던 기술을 개발’하는 셈이 될 것이고, 미래기술을 목표로 삼으면 많은 위험이 따르더라도 향후 선진 기업들과 비슷한 수준에 이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부회장은 앞으로 기술개발 경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원천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사업 자체의 존립을 생각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당시의 보편화되어 있었던 기계식 엔진이 아닌 차차세대(2세대, 2nd Next Generation)를 대비한 엔진개발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후발주자가 제품 경쟁력을 조기에 확보하기 위해서는 좀 더 멀리 넓게 봐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림 1 > 엔진기술 개발의 전략적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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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추종자(Follower)들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의 경쟁 논리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게임 룰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꾸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명확하게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고민에서, 이 부회장은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인프라를 직접 만들어 나가는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이다.

“기술은 멀리 보고 개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을 하더라도 제품의 수명이 길지요. 날아가는 새를 맞추려면 새보다 훨씬 앞쪽에 화살을 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그래서 이 부회장은 당시 주력기술인 기계(Carburetor)식 엔진보다는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라 할 수 있는 전자제어 엔진(MPI)의 개발에 집중했고, 기존의 것보다 초월적 지위에 있는 새로운 세대의 엔진개발을 선택했다.
 
이는 지금까지 성공해 온 중소·중견 기업들이 기술전략의 방향을 1~2세대 앞선 기술에 집중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기술 전략 방향을 결정한 이후 이 부회장은 엔진을 개발할 수 있는 자원, 즉 핵심인력을 확보하는 일에 나섰다. 독자 엔진개발을 위한 우수한 개발 인력이 절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직접 뛰었습니다. 우수한 인력을 선발하기 위해 대학교를 직접 돌아다녔고 수많은 교수님들을 만났습니다.”

이 부회장은 기존의 연구개발 패러다임에 굳어져 연구 강직성(Rigidity)에 빠져 있는 연구원들을 배제하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신입 연구인력을 모았다.

인력 선발의 가장 우선사항은 바로 ‘열정’이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을 선발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기본적인 학문 역량을 갖추고 새로운 기술과 목표를 향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는 ‘열정’과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인력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했다.

초기 자동차 엔진개발 인력은 겨우 신입 연구원 5명에 불과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추가 인력 확보에 노력해 우수한 연구인력들을 확보해 나갔다.

그러나 차세대 엔진개발을 향한 과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회사 내부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에 젖어 있던 기술 부문의 경영자들을 중심으로 이상한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이제까지 선진기업으로부터 얻어 오던 기술마저도 끊기게 돼 회사가 망하게 될 것’이라며 독자 엔진개발을 강하게 반대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해 가면서 불확실한 엔진기술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할 필요가 없는 데다가 선도기업에서조차 만들기 힘든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논리였다.

결국 이 부회장은 직원들에게 허황된 꿈을 심어준다며 일부 임원진들에게 사기꾼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고, 한순간에 개발책임자에서 보직 해임을 당해 6개월여 동안 무보직으로 근무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젊었으니까요. 열정을 품은 젊은 때였기에 견뎠습니다.”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냐는 질문에 대한 이 부회장의 답변이다.
 
덧붙여 “저는 故 정주영 회장님에게 빚을 졌습니다. R&D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의 관심과 헌신이 가장 중요한데, 정 회장님께서는 제게 모든 것을 지원해 주셨지요.”

그리고 보직 해임을 당한 시절, 그동안 시간이 없이 읽지 못했던 1천여 편의 논문과 전문서적을 볼 수 있어 도움이 됐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런 어려움을 딛고 이 부회장은 회사 내의 제품개발 체계를 완성하기 시작했다.
 
자체 기술력 확보에 있어 엔진생산을 위한 Detail 설계는 내부에서 개발하고, 개념설계와 전산해석 등은 당분간 외부의 기술자원을 활용(영국의 전문기관)하기로 결정했다.
 
자동차를 포함해 종합시스템 개발역량을 요구하는 제품은 기본적으로 Total System과 핵심부품에 대한 기술력을 갖춘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주변기술, 시스템과 평가기술에 대한 이해와 기술지식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기술개발을 위한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고 오랜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기술영역에 초기부터 과도한 연구에너지를 쏟는 것은 자칫 시간적 손실과 자원의 분산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림 2 > 엔진기술 확보를 위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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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91년 1월, 마침내 열악한 국내 여건과 개발인프라, 일부 임원진의 집요한 반대 등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첨단 전자제어 엔진의 1세대인 ‘알파(α)엔진’이 탄생했다.
 
이 엔진은 초기에 Scoup 모델에 적용된 후 누적 생산 1,200만 대(2012년 기준, 현재는 중국공장에서 생산)를 돌파하며 성공을 일궈낸 제품이다. 그 후에도 베타(β)엔진과 뮤(μ)엔진, 입실론(ε)엔진의 생산이 뒤따랐다.

이현순 부회장은 알파엔진, 베타엔진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2000년대 이후에 사용될 ‘세계 Top-Class의 엔진을 설계하자’는 ‘제2의 혁신 비전’을 선포했다. 한 번의 성공으로 현실에 안주하다가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나는 기업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었다.
 
‘기술개발은 항상 먼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철학에 따라, 2004년에는 엔진기술 수출의 효시가 된 세타(θ ; Theta)엔진을 개발해냈다.

그 후 메르세데스 벤츠(Benz)社의 파워트레인 개발담당자들이 현대자동차를 방문했을 때 엔진의 설계개념과 개발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그들의 보고서에 ‘우리가 설계해도 이보다 더 잘 설계하고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을 실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세타엔진 개발 성공은 다양한 사업적 성과로 이어졌다. 벤츠社의 엔지니어의 방문 이후 크라이슬러(당시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기술제휴 계약을 추진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통쾌한 일은 과거 현대자동차로부터 막대한 로열티를 받아가던 미쓰비시 자동차가 세타엔진에 큰 관심으로 보이고 그 기술로 자동차 생산을 하고자 한 것이다.

“거꾸로 된 거죠. 정말 통쾌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미쓰비시에서 기술제휴 요청을 받았던 때를 회상하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조건을 걸었습니다. 임의로 설계변경시 계약이 파기되며, 부품과 공작기계는 모두 한국에서 가져간다. 그리고 공장설계는 한국 엔지니어가 직접 한다는 거였죠.”

기술력을 갖춘 강자의 선택에 미쓰비시와 크라이슬러사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양사에서 30~40명을 한국으로 파견했고 2달간 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현대자동차의 엔지니어가 3명씩 한 팀을 이뤄 현지에 파견됐고, 4년여의 긴 시간 동안 설계콘셉트(Concept)부터 부품공급, 공장설계, 생산설비에 대한 종합교육과 기술지도를 추진하는 활동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이 엔진을 ‘World Engine’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특히 미쓰비시는 이 엔진으로 생산되는 자동차가 거의 절반에 달하며, 2007년 한 해에 176만 대 생산, 단일엔진 생산량으로 세계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엔진기술의 Global 경쟁력 확보와
 성공 Point


이현순 부회장이 최고 수준의 엔진을 개발해 기술적인 성공을 이뤄내기까지의 핵심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이 부회장은 기술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이 혁신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먼저, 최고경영자의 확약과 물질적/정신적 지원(Commitment)이 있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회사의 전략적 방향이 정해지고 목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의사결정권자의 확약과 지원이 필수적이다. 이는 전략추진이나 일반적인 경영활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최고경영자의 지원이 없다면 다른 관리자의 협력을 유도하기가 어려워지고 이로 인하여 필요한 자원과 정보를 취합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모든 기획의 실행을 위한 필수조건은 바로 최고경영자의 ‘Commitment’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이 경영진들의 냉소와 질시 속에서도 연구에 전념하며 알파엔진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故 정주영 회장의 관심과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한 차원 앞선 기술에 한 발 빠른 개발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경쟁사보다 우월한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항상 한 발 먼저 시작해야 한다.
 
이 부회장이 알파엔진 개발을 시작한 시점도 불과 몇 개의 글로벌 리더들만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던 시기였다고 한다. 당시 신입사원을 중심으로 밤낮없이 개발에 몰두한 결과로 나온 성과는 가히 혁신적이었다.
 
회사의 미래를 걸고 연구활동에 매진하는 사람의 정신자세는 통상적인 개발 속도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월등하다.

그림 3 > 성공 Point와 주요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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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현순 실장이 보직 해임을 당해 차세대 엔진개발 과제가 중단되며, 부득이 6개월 동안이나 엔진개발을 수행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진개발 완료 시점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기술에 비해 6개월~1년 정도의 Gap이 있을 뿐이었고 제품의 성능과 내구성, 가격경쟁력은 세계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었다.

세 번째는 핵심인력의 확보와 더불어 후진을 양성하는 일이다.

“엔지니어는 자기보다 훌륭한 후배를 키워내야만 합니다. 신기술 개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후진양성입니다.”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더욱 힘을 주어 강조하는 이현순 부회장의 모습에서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국내 대부분의 기업이 현업에 대한 비중을 지나치게 높게 두고 있어 교육이나 역량 개선에는 소극적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연구개발자들이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도록 하는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연구원이 스스로 자기계발에 대한 열망을 키우고 역량 개선을 위한 교육을 요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돼야만 기업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CEO를 비롯한 경영층에서의 개발자의 역량개발과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만 가능하다.

교육이나 역량의 강화를 위한 과정은 장기간이 소요되는 활동이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시간에 내부의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네 번째는 새로운 기술개발이나 연구과제 기획단계에서는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해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 자동차를 포함한 대부분의 제품이나 서비스들은 기계와 전자, 인체공학, 감성, 디자인 등 다양하면서도 복합적, 융합적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기술의 기반이 취약한 초기단계(Early-Stage)의 기업이나 스타트업(Start-up) 기업들은 다양한 사업적, 기술적 협력과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지식기반(Knowledge-base)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일차적으로는 내재화된 지식기반을 극대화해야 하며, 부족한 부분은 Open Innovation 방법을 활용하여 시너지를 극대화 해야 한다.

이 부회장의 사례에서처럼 국내의 기술기반이 전무한 상황에서는 글로벌 관점에서의 네트워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이 부회장은 전 세계 다양한 기술 전문가들과 중요한 협력 파트너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조건은 연구자의 창의성을 지속적으로 자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엔지니어가 실제 자동차 설계연구에 투입되어 사업적 성공을 경험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이 반영되기까지는 수많은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이러한 연구 인력이 초기에 좌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구현할 수 있는 업무적 탈출구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자동차에서는 10년 가까이 ‘뭐라도 좋으니 우선 만들어 보라’는 취지의 창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여기서 탄생한 아이디어가 실제 차량에 적용되기도 했고, 미래형 기술인 리모콘을 활용한 자동운전 체계, 외부형 에어백(Air Bag) 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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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순 부회장(좌)이 엔진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시사점과 기업의 기술경영을 위한 제언

지금까지 우리는 이현순 부회장이 현대자동차에서 차세대 엔진을 개발하기까지의 과정과 생생한 경험을 살펴봤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산업의 특성에 따라서 기술개발에 대한 전략과 운영 방법은 다르지만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같다.
 
이현순 부회장은 자동차 기술을 개발해 오면서 얻은 성공의 희열, 그 과정에서의 고민과 좌절 등의 경험을 통해 몇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먼저, 현재 우리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기술을 이끄는 위치에 있지 않다면 기술전략의 방향을 미래의 경쟁에서 동등하게 견줄 수 있는 ‘High-Edge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기술경쟁의 전장(戰場)을 바꿀 수 있는 파괴적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나 기존 기술의 연장선에 목표를 세워야 한다면, 급진적(Radical)기술과 혁신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소·중견기업의 경우에는 자원의 여력상, 미래의 신기술이나 새로운 사업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이현순 부회장은 지적했다. 기술경쟁은 중소기업, 대기업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강한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만이 인정받고 그로 인해 그 기업이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것은 자기의 현재 사업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연구개발비의 배분은 기존사업 분야에 70%, 신사업·신기술 분야에 30% 정도 배정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과거 국내에는 현대자동차 이외에도 기아와 대우, 쌍용 등 여러 자동차 기업이 있었다.
 
하지만 대우자동차는 독일 오펠과 호주 GM홀덴으로부터, 기아자동차는 마쯔다, 쌍용은 벤츠의 옛날 기술을 활용한 생산에 집중했고, 결국 자체설계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기업의 신제품 개발과 연구문화를 변혁하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변화를 기피하고 거부하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점이다.

변화를 주도하는 선각자들에 의하여 문명이 발전하고, 그에 따른 기술들이 진화한다. 변화와 혁신에 대한 거부는 합의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고, 극복의 대상이다.
 
이현순 부회장이 당시 차세대 엔진개발을 위한 팀을 꾸리고, 개발을 추진하는 데 있어, 기존의 기술도입을 중심으로 한 개발체계를 고수하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기술적 발전과 그에 따른 성과가 보이면, 그러한 가상적 힘에 의한 벽은 깨지게 마련이다. 결국 현대자동차의 우수한 엔진기술력 확보는 미쓰비시가 오히려 역으로 기술제휴를 요청하는 상황에 이르게 했다.

세 번째는 핵심 인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이들을 육성하고, 연구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이 중요하다.
 
기업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조직 기능 간의 역할 구분이 명확하게 되어 가면, 보통은 인력채용에 있어서는 담당부서 주도로 그리고 실무부서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기술을 총괄하는 사람이 반드시 채용과정에서 직접 해당자를 만나보는 것이 필요하다. 담당관리자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고기술경영자의 생각과 비전이 교감할 때 연구자의 의지와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회장은 신입사원의 채용에는 반드시 직접 만나보고 최종 결정을 했다고 한다. 또한 후계자를 위한 육성계획을 구체화하고, 자신보다 우월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동차의 연구개발에는 프로젝트 당 200여 명이 한 팀이 되어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업무의 분담과 서로 화합될 수 있는 정도로 기술적 수준이 갖추어져야 하고 서로를 기술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연구자는 자기의 역량과 능력을 스스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은 ‘자신의 한계는 남이 정해 주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젊은 박사! 자네는 할 수 있어!’라는 당시 故 정주영 회장의 말이 연구활동에서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벼룩은 스스로 자기의 한계를 규정한다고 한다. 벼룩을 유리컵 속에 넣어 두면 처음에는 바깥으로 탈출하기 위하여 자기의 최선을 다하여 튀어 오른다.
 
하지만 컵 위에 유리 받침을 두면, 벼룩이 튀어 오를 때 유리 벽에 부딪히게 되는데, 이러한 일이 몇 번만 반복되면, 벼룩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그 밑부분까지라고 한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유리 받침을 치우더라도 절대 바깥으로 튀어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현순 부회장은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내가 도요타의 최고기술경영자라면… 내가 이 회사의 오너(Owner)라면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한다.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통해 많이 성장할 수 있었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그지만 여전히 “왜 그 당시 좀 더 도전적(Aggressive)이지 못했을까!”라는 후회가 남는다고 말한다.
 
현재 (주두산 그룹의 CTO로 몸담고 있는 이현순 부회장의 새로운 도전에 성공의 여신이 함께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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