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Movie in Tech - 이중 중력은 과연 가능할까?

업사이드 다운

영화 <업사이드 다운>은 아름다운 여인의 정해진 운명을 뛰어넘는 운명적 사랑을 큰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관심이 가는 것은 영화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위아래가 거꾸로 상반된 두 행성, 정반대의 중력이 존재하는 두 세계의 만남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과 표현력에 있다.

과학적으로 이중 행성, 이중 중력의 존재가 과연 가능할까?

글 최성우 과학평론가

사진출처 
http://movie.naver.com(네이버 영화)

 

업사이드다운.png



업사이드 다운 Upside Down, 2012

개요 SF, 판타지 / 프랑스, 캐나다 / 108분 / 2012. 11. 08 개봉

감독 후안 솔라나스

출연 커스틴 던스트(에덴), 짐 스터게스(아담)

등급 12세 관람가

 

업사이드다운2.png



정반대의 중력이 존재하는 세계

최근 개봉된 <업사이드 다운>이라는 다소 독특한 소재의 SF영화가 있다.

디에고 솔라나스 감독에, 짐 스터게스와 커스틴 던스트가 남녀 주인공을 맡은 이 영화는, 서로 거꾸로 된 세계에 사는 두 남녀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디에고 솔라니스 감독은 예전에 <머리 없는 남자>라는 기상천외한 단편영화로 칸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 이 영화 역시 대단히 기발한 설정이 돋보인다.

즉 위와 아래가 거꾸로 상반된 두 행성이 정반대의 중력으로 존재한다는 이 영화의 배경에서, 각각의 중력이 지배하는 서로다른 두 세계는 서로 접촉하거나 교류할 수 없으며, 이중 중력으로 엇갈린 채 마주보고 있다는 설정이다.

 

업사이드다운3.png



영화가 가진 기발한 소재, 이중 중력

영화의 줄거리는 두 세계가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어느 숲 속에서, 각각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던 어린 소년과 소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온갖 역경과 고난을 딛고 사랑을 완성시켜 나아간다는 이야기이다.
 
하부세계의 아담(짐 스터지스 분)과 상부세계의 에덴(커스틴 던스트 분)이 견우와 직녀, 혹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나누는 금단의 사랑은 다소 진부한 주제일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풍부한 상상력과 화려한 비주얼 등을 동원하여 시처럼 아름다운 전개와 기발하면서도 몽환적인 장면들을 자주 보여준다.

두 세계가 가까이 맞닿은 기암절벽에 서로 거꾸로 매달린 채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라든가, 눈발이 날리는 숲속에서 추적자들을 피하려고 아담이 에덴을 업고서 무중력상태에 가깝게 뛰어 다니는 모습 등은 웬만한 멜로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들일 것이다.

또한 상부, 하부 세계를 넘나드는 꿀벌로부터 채취한 재료로 만든 팬케이크가 정지할 듯 날아오는 장면이라든가, 같은 재료로 만든 안티에이징 크림의 효능 시현 역시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남녀주인공의 사랑을 가로막는 방해물 역시 기발하다. 상부세계와 하부세계 출신이라는 신분적 차이뿐 아니라, ‘이중 중력 법칙’을 포함한 물리적 요인이 그것이다.

서로 거꾸로 생활하는 세계라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탁월한 발명가의 재질을 지닌 남자주인공 아담이 상부세계의 무거운 물질들을 모아서 만든 균형추를 옷 속에 내장하여 여주인공을 만나러 가지만, 가능한 시간은 1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상대방의 세계에 넘어가면 온도가 높아져서 몸이 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부세계의 철저한 보안시스템과, 탈출자들을 쫓는 국경수비대의 삼엄한 감시 역시 남자주인공이 뛰어넘어야 할 힘겨운 장벽들이다.

 

업사이드1.png



업사이드2.png


업사이드3.png


 

 

업사이드4.png



이중 행성과 이중 중력의 법칙?

그렇다면, 이처럼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남자주인공에게 온갖 시련과 역경을 가져다주는 영화의 물리법칙들은 과연 개연성과 타당성이 있을까?

영화의 첫 장면에서 내레이션이 나타내는 독특한 ‘이중 중력의 법칙’은 다음과 같다.

즉 서로 거의 맞닿아 있는 ‘이중 행성’에서 두 세계의 중력이 각자 세계의 물체에만 서로 반대방향으로 작용하며, 두 세계에 속한 물체들은 자신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고, 반대 세계로 넘어갈 경우 열에 의해 타버린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난 장소는 두 세계가 거의 맞닿을 듯 가까이 있는 숲속의 암벽 부근이지만, 두 세계가 ‘공식적으로’ 교류하는 유일한 곳은 상부세계의 대기업인 트랜스월드가 세운 큰 빌딩이다.

같은 건물의 사무실에서도 이 빌딩의 0층을 기점으로 하여 서로 거꾸로 마주 보듯이 생활해야만 한다. 물리학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물론 이 영화에서설정되는 물리법칙들은 타당성은 고사하고 거의 ‘넌센스’에 가깝다.

먼저 이중 행성이라는 설정부터가 억지에 가까운데, 이중 행성이란 거의 맞닿을 듯이 곁에 존재하는 두 행성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어도 크기와 중력이 엇비슷하여 서로의 주변을 돌고 있는 행성 등을 의미한다.
 
지구의 위성인 달조차도 크기가 태양계의 다른 위성들 및 모행성인 지구에 비해 비교적 큰 편이라, 지구와 달을 행성과 위성의 관계가 아닌 이중 행성계로 보는 천문학자들도 있다.

지금은 비록 행성의 지위를 ‘박탈’ 당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이었던 명왕성과, 그의 가장 큰 위성 카론은 대개 이중 행성계로 간주되었다.
 
이 두 천체의 질량 중심이 명왕성 내부가 아니라, 두 천체의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구와 달을 합한 계의 질량 중심은 지구 내부에 위치한다.

설령 영화에서처럼 거의 맞붙은 이중 행성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이중 중력의 법칙 따위는 결코 우주에 존재할 수 없다.

중력, 즉 만유인력은 질량을 지니는 물체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으로써, 뉴턴(Newton)이 밝힌 역학법칙의 공식에 따라 그 크기는 질량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물체에 서로 달리 작용하는 이중 중력이란, 뉴턴의 고전역학을 수정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을 끌어들인다 해도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두 행성이 맞닿은 부근의 지점에서는 중력장이 0에 가까워서, 어떤 물체이든 무중력에 근접한 상태가 될 것이다.
 
즉 남녀 주인공이 등에 업힌 상태에서만 무중력에 가까운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등에 업지 않아도 둘 다 무중력 상태처럼 크게 뛰어오르면서 다닐 수 있을 것이다.

그에 앞서서 영화에서 보여주는 상부, 하부의 두 세계를 각각의 두 개의 행성으로 보기에는 비주얼 상으로도 너무 무리가 많은 듯하다.

이중 중력 법칙의 실제 여부를 떠나서, 영화가 이 새로운(?) 물리법칙에 따른 나름의 개연성을 보여주려 한 대목이 몇 군데 눈에 띄기는 한다.

균형추로 상부의 중력에 대응하면서 상부세계에 몰래 잠입한 남자주인공이 화장실에 갔다가 소변이 아래로 흐르지 않고 공중으로 솟구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는 장면이라든가, 느슨해진 넥타이가 역시 위쪽으로 올라가는 장면 등이다.

그러나 넥타이에 앞서서 머리털은 전혀 위쪽으로 솟구치지 않는 등, 전반적으로 허술한 느낌을 주며, 또한 한쪽 세계에 속한 물체가 반대 세계로 넘어갈 경우 열에 의해 타버린다는 마지막 중력 법칙 역시 실제 여부를 떠나서 영화 내에서의 개연성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하부세계의 다른 물체들은 상부세계로 가면 곧 타버릴 정도로 열이 나는 반면에, 하부세계로부터 뽑아 올라가는 석유는 상부세계의 에너지원이자 자원으로 아무 문제없이 이용되기 때문이다.

하부세계의 석유가 올라간 지 1시간 내에 모두 소비된다고 가정하는 것도 터무니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 영화는 과학기술적인 장치가 돋보이는 SF영화라기 보다는, 멜로물적인 성격의 판타지 영화라고 보는 것이 나을 듯하다. 따라서 실제의 물리법칙이나 개연성 등을 꼼꼼히 따지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본 필자의 지인이 ‘대학 1학년 수준의 물리학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만 자문을 구했어도 저런 엉터리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 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차라리 ‘서로 거꾸로 된 세상’ 이라는 환상적인 비주얼을 설명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중 중력의 법칙’ 이라는 개연성과 타당성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물리법칙을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업사이드5.png



영화가 말하는 그 외의 의미들

이 영화는 SF나 과학기술적 측면에서는 무척 실망스러울 듯하고, 멜로물 등으로서도 좀 진부한 주제로 보일 듯하다. 즉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던, 이루어지기 힘든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예전에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신분이나 빈부의 차이이든, 세상 자체나 ‘종족’의 차이이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전쟁을 이어 온 두 종족의 이야기를 다룬 <언더월드> 시리즈라든가, 역시 뱀파이어가 나오는 비슷한 소재로서 최근에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 개봉된 <트와이라잇> 등에서 본 적이 있다.

또한 신분이나 국적 등을 뛰어넘는 남녀 간의 애틋하고도 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꼽기도 어려울 것이다.

필자가 이 영화에서 색다르게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SF도 멜로도 아닌, ‘상부세계와 하부세계’의 격차가 보여주는 사회학적, 정치경제적 측면이다.

이 역시 물론 전월 호에서 소개한 <토탈리콜>이라든가 그 밖의 여러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했겠지만, 단순한 사회적 격차 뿐 아니라 특허라든가 기술인력의 스카웃 문제 등, 과학기술과 관련된 제도적 측면이나 지식재산권의 정치경제학 등이 장면 사이사이에 간간이 드러나기도 한다.

특히 이모할머니로부터 터득한 재료를 바탕으로 획기적인 안티에이징 크림을 개발하던 남자주인공이 하부세계의 초라한 직장을 떠나서 상부세계의 대기업인 트랜스월드에 스카웃(?)되는 장면은, 그간 우리나라에서도 논란이 된 바 있는 기술인력 빼가기 문제, 혹은 기술자의 입장에서는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생각하게 만든다.

안티에이징 크림을 둘러싼 남자주인공과 회사 간의 암투는 지식재산권의 측면에서도 눈여겨 볼만하다.

요컨대, 필자가 보기에 <업사이드 다운>은 SF영화나 멜로물로서는 진부하거나 실망스러운 면이 많긴 하지만, 동화적인 전개와 함께 영상미가 돋보이며 나름 생각해볼 여러 문제들을 행간에 담고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