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ISSUE 01

기술경영성공사례 국내 - (주)보령제약, 연구소 운영사례

새로운 Catch-Up을 위한 연구개발


공동작성 _

신준석 교수(성균관대학교 시스템경영공학과),
허원경 전문작가(프리랜서)

대담자 _

김지한 연구소장((주)보령제약 합성연구소),
김희영 팀장((주)보령제약 연구지원팀)


본지는 기술 및 제품의 개발과정이 매우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있는 국내 기업환경에서 다른 기업의 성공프로젝트를 기술경영측면에서 살펴봄으로써 기업의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에 도움을 주고자 2007년 8월부터 기술경영성공사례를 게재해왔다.

이번호에서는 (주)보령제약의 운영사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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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로 인한 시장개방, 약값 인하 등 국내 제약기업은 유례없는 환경 변화의 폭풍 속에 놓여 있다.

시장개방으로 Merck, Pfizer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의 공세를 정면으로 받게 되었고, 그동안 내수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해 왔던 국내 제약기업들은 약값 인하로 인한 마진폭의 감소로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약기업이 자체 연구개발에 집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국내 대기업조차도 개량 신약이나 제네릭1) 연구개발이 대부분일 정도로 많은 기업들은 공정특허와 라이센싱에 의존하고 있다. 기존에 치료할 수 없던 병을 치료하는 신약개발은 국내기업에게는 아직도 넘기 힘든 벽이다.

(1) 특허 보호 중인 의약품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특허가 만료됐거나 특허보호를 받지 않는 의약품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제약기업의 연구소는 어떠한 추격형(Catch-Up) 연구개발을 해야 할까? 보령제약 연구소가 만들어가고 있는 답은 그래서 흥미롭다.


제약기업의 현실: Catch-Up

협소한 내수시장이 열리고 있다
Point: 내수시장의 세계 시장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국내 제약산업은 5%대의 국가경제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9~10%대의 성장률을 보여 왔다. 그렇다면 세계 제약 시장에서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2005년 세계 제약시장 규모는 560조원, 우리나라는 11.4조원을 기록하여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 제약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꾸준한 성장으로 2010년 우리나라 시장규모가 19.1조원까지 늘어났지만 세계 제약시장의 규모 또한 커져 비중은 오히려 1.7%로 줄어들었다(출처 : 2010 보건산업백서, 보건산업진흥원).

국내 제약산업의 내수시장은 아직도 협소한 실정이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제약산업은 우리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제약산업의 연구개발, 마케팅 등 대부분의 역량 수준이 선진국보다 뒤쳐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제약산업의 내수시장에 대한 의존은 클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이러한 내수시장이 FTA 협정으로 인해 빠르게 개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적재산권 강화로 특허 분쟁은 증가하고, 제네릭 신제품 개발은 지연되고 있다.
 
또한 관세 철폐로 인해 수입약품의 가격경쟁력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신제품 전략에 차질이 생기고, 시장에서는 해외 기업의 저가공세로 강력한 가격 인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매출과 수익이 모두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내수시장의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 제약기업들은 과거 물질특허2) 도입 이후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돌파구는 어디에 있을까?

(2) 물질 자체를 대상으로 하여 주어지는 특허를 일컫는다. 물질특허권을 받게 되면 강력한 독점권을 누릴 수 있다.)


그림1 한·미 FTA 이후 우리나라 제약산업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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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ch-Up을 해야 한다
Point: 어렵지만 빠른 추격(Catch-Up)을 해야 한다.

한국 제약기업의 선택은 두 가지 뿐이다.

첫 번째는 사업 철수이다. Pfizer, Merck 등과 같은 세계적 제약기업과 경쟁할 만한 연구개발과 마케팅 역량을 갖추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면 사업을 철수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빠르게 추격하는 것이다. 자금 여력이 충분하다면 해외 기업 M&A를 통해 추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실제로 M&A는 제약산업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내 제약기업의 해외 기업 M&A는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파이낸싱에서 언어, 문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들을 극복해 본 경험이 없는 기업들은 쉽게 내리기 힘든 결정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자체적인 역량 강화뿐이다. 블록버스터 신약이든, 니치버스터(Niche Buster : 커다란 틈새시장) 신약이든 다양한 신약 연구개발과 마케팅 역량의 동반강화를 통해 정면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이차전지 등 국내 타 산업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추격(Catch-Up)형 기업모델을 이제 국내 제약회사들도 자체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산업과 비교해보았을 때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사업화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수많은 규제와 장애에 부딪힐 수 있는 제약산업의 특성상, 다른 산업의 추격 모델을 그대로 쓸 수는 없다.

제약 고유의 추격형 기업모델을 개발해야하는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우선 지적재산권 역량으로 방어하라

지적재산권 방어는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Point: 강력한 지적재산권 팀이 필요하다.

제약산업은 모든 산업 중에서 지적재산권 분쟁이 가장 많은 분야이다. 그만큼 특허분쟁으로 인한 손실위험도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제품에서 제네릭 비중이 높은 국내 제약기업에게 미국, 유럽 제약기업으로부터의 특허침해소송은 항상 준비해야 하는 ‘일상다반사’적 위험이다.
 
신약의 시장 진입이 지연되는 것은 흔한 위험이고, 소송으로 인해 제품 출시를 중단하고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위험을 방치하고서는 신약개발도 마케팅 역량 강화도없다.
 
그래서 무엇보다 제약기업이 가장 먼저 갖춰야 하는 것은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고 강력한 지적재산권 팀이다. 빠른 특허 정보 수집과 특허권 침해 여부 판단, 정확하고 강력한 분쟁대응 능력은 제약기업들에게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보령제약의 방어, 방어, 방어
Point: 철저한 지적재산권 방어로 역량 강화의 기반을 구축한다.

보령제약은 기나긴 특허분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물질 특허 도입 직후인 1987년 ‘캡토프릴 분쟁’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ristol-Myers-Squibb)社’와의 치열한 특허분쟁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일전이었다.
 
1년 넘게 진행된 이 소송은 미국의 슈퍼 301조까지 발동된 힘겨운 싸움이었다. 결국 1988년에 스퀴브사는 301조 발동을 취하하고, 1990년에는 침해소송도 취하했다.

보령제약은 스퀴브사와의 특허분쟁 이후 지속적으로 지적재산권 분쟁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했는데, 이 노력의 결실은 2000년대 들어서 높은 특허분쟁 승소율로 나타났다.
 
보령제약은 ‘사노피 아벤티스(Sanofi-Aventis)’와의 항암제 특허 분쟁, ‘노바티스(Novatis)’와의 백혈병 치료제 특허분쟁 등 다국적 제약 회사와의 특허분쟁에서 2006년 이후 100%의 승소율을 자랑하고 있다.

여기서 메시지는 명확하다. 연구개발과 마케팅 역량 강화에 앞서 제약기업이 가장 먼저 강화해야 하는 것은 지적재산권 역량이라는 점이다. 철저한 방어 없이 신약개발을 통한 공격은 불가능하다.


그림2 보령제약의 특허분쟁 승소사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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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연구개발로 수익을 창출하라

수익을 내지 못하면 연구개발도 없다
Point: 제네릭 의약품 개발로 신약개발을 위한 입지를 다져라.

어떤 기업연구소나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가 있다. ‘수익을 창출하라’는 사내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불경기로 인해 성장이 정체되면, 대부분의 기업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비용을 절감하는데 그 대표적 타깃이 연구소 또는 연구개발 파트이다.

당장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연구개발 비용을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강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제약기업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신약개발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기존의 약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원천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10년에서 많게는 20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연구소는 중장기 원천 신약개발에 100% 집중할 수는 없으며 비교적 단기간 동안 사업화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제네릭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보령제약의 ‘1:1’ 제네릭-신약 연구개발 체제
Point: 제네릭 50%, 신약 50% 연구개발 체제를 구축하라.

대다수의 제약기업들이 일반적으로 2:8의 비율을 이야기한다. 중장기 연구개발에 20%, 단기 연구개발에 80%를 투자하는 것이 적정 비율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비율이 모든 기업에 적용 가능한 것은 아니다.

좀 더 빠르게 Catch-Up을 해야 하는 기업의 경우 선도기업과 같은 비율로는 신약개발 역량을 강화할 수 없다. 여기서 보령제약은 2:8이 아닌 5:5의 비율을 선택했다. 제네릭 50%, 신약 50%로 Catch-Up을 위한 새로운 비율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단기 과제와 중장기 과제의 연구개발 관리를 차별화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단기과제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성이다. 개발한 제네릭은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의 생산성이다. 가능한한 적은 인력과 비용을 투자해 빠른 시간 안에 결과를 내야 한다.
 
연구개발 과제선정 기준도 당연히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신약 연구개발로 세계로

신약 연구개발 없이 세계적 제약기업도 없다
Point: 신약 연구개발 역량 강화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라.

신약 연구개발은 모든 제약기업의 꿈이다. 보령제약도 연구소 창립 이래 지속적으로 신약개발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30여 년간 내분비 계통에서 축적해온 역량을 활용한 최근의 히트작은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이다.

보령제약은 카나브 개발을 위해 12년간 500억원을 투입했고, 2011년 출시된 카나브는 첫 해 국내에서 1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으며, 세계 13개국에 총 3,000만 달러의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일본 등 17개 국가에서 32개 물질 특허도 출원하는 성공을 거뒀다.

보령제약의 신약 연구개발의 핵심은 창의성이다. 10년 후 개발이 완료되는 신약의 수익성을 정확히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출, 소요비용, 기간과 같은 수익성·경제성 지표는 신약 연구개발 과제 선정의 핵심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얼마나 타사의 약품과 차별화 되는가’이다. 새로운 제법, 새로운 물질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기전이다.

보령제약 신약개발의 초점은 연구개발 과제 선정과 관리에 맞춰져 있다.

장기간 꾸준히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성실성과 연구 대상 선정과 방법에서의 창의성을 연구개발 아이템 선정 기준, 연구원 평가 기준, 나아가 연구개발 시스템 자체에 녹여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림3 보령제약 신약 카나브 성공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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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보령제약 신약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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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 주요단계를 기초연구단계부터 자력으로 거쳐야 ‘역량’이 생긴다
Point: 신약개발 주요단계를 처음부터 모두 거쳐본 경험이야말로 연구개발 역량의 핵심이다

카나브 정 개발 사례의 경우 중간에 라이센싱을 하지 않고 기초실험 단계부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초연구단계부터 거친 연구원들의 연구개발 역량은 다음 신약개발의 역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기초실험 단계에서 시제품 인증까지의 주요단계를 모두 경험해본 연구원은 많지 않고 이 과정을 모두 거친 연구원과 그렇지 못한 연구원 사이의 격차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그 이유는 각 단계의 성공률을 좌우하는 핵심의 절반이 창의성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경험을 통한 역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모든 단계를 경험한 연구원이라면 그 역량가치는 더욱 더 커지는 것이다.


그림5 신약개발 주요단계
(TRL:Technology Readiness 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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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역량을 기반으로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보령제약의 신약개발 전략은 명쾌하다. 30년간 누적된 연구개발 역량에 사내의 모든 창의성과 신약개발 주요단계의 경험을 집중시킨다. 쌓아온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신약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개발 역량 강화는 국내 제약기업 세계화의 첫 단추이기도 하다. 물론 연구개발 역량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
 
신약개발 주요단계를 거치는 동안 재정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으나, 이러한 상황에서 개발 중인 신약을 마케팅 할 수 있는 능력은 제약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 가운데 하나이다.
 
이에 보령제약은 기술력 검증과 마케팅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각종 시상 제도에 활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홍보가 될 수 있도록 했다.

2011년 대한민국 기술대상에서 대상(대통령상)수상을 통하여 대중에게 널리 알릴 수 있었던 것은 보령제약 마케팅 역량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시사점

보령제약 연구소의 변화는, 국내 제약기업의 새로운 Catch-Up을 위한 몇 가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첫째, 지적재산권을 철저히 방어하라.

다국적 기업과의 특허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면, 경쟁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신속하고 정확하면서도 강력한 지적재산권팀을 연구개발체계와 일체화시키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다.

둘째, 제네릭과 신약 연구개발 사이의 균형을 잡아라.

제약기업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단기와 중장기 연구개발의 균형도 이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기업의 단기수익을 위해 필요한 연구개발과 역량강화를 위해 필요한 연구개발의 비율을 정확하게 개선하고, 두 연구개발 유형 간에는 연구개발 시스템도 차별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약하더라도 자사가 가진 역량을 기반으로해야 한다.

보유한 역량 가운데 가장 강한 역량에 집중한 뒤, 여기에 사내의 모든 창의성과 신약개발 주요단계의 경험을 더해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신약개발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지말고, 가지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