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 성공사례

제19회 기술경영인 하계포럼 - 통합강좌

생각의 틀을 바꿔 기술을 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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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탄생 250주년을 맞는 의미 깊은 해, 하지만 불확실성이 팽배한 현 시대에 국가와 기업, 국민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 때에 다산 선생의 지혜를 빌려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기존의 틀을 바꾸려 했던 다산 선생

다산 선생은 다양한 업적을 남겨 우리 후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불확실성의 시대, R&D의 새로운 틀을 짜자!’라는 포럼의 대주제에 맥을 함께 할 수 있는 주제가 있어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다산 선생은 조선시대 주류를 이루었던 주자학에 반기를 들고만사만물은 마음 속에 있는 이치가 아님을 선언하기도 했다.

말이 아닌 행동, 마음속에만 두고 있는 어떤 선량함도 행위로 옮기지 않는 것은 무용하다고 믿고, 그런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법과 제도를 개혁해야 조선이라는 나라가 새롭게 태어남을 강조했다. 이에 관제(官制)로부터, 고적제(考績制 : 공직자 고과 평가), 귀천을 따지는 청요직(淸要職) 폐지, 과거제, 토지제도, 세제(稅制), 둔전제(屯田制), 사창제(社倉制), 화폐제, 향리제(鄕吏制), 이용감(利用監) 신설 등 국가의 온갖 법과 제도의 개혁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다산의 법제개혁의 목표는 백성들이 공정한 세상에서 고르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다산의 법제개혁 목적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우리 정부도 국민의 양극화 현상은 물론 나아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정책을 강화하는 정책을 꾸준히 펼쳐야 할 것이다.


기술혁신이 국가 발전의 핵심

다산은 일생동안 국가 발전의 대안 모색에 생애를 걸었다. 특히 국가적으로 기술혁신에 총력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연구를 통한 기술개발과 나아가 그것을 국민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널리 알리기도 했다.

다산의 이러한 노력은 기술개발과 기술혁신에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요즘에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200년전 성리학적 논쟁에만 온 마음을 기울이던 시절의 조선시대에 그런 점에 착목했던 다산의 혜안은 높지 않을 수 없다.

다산은 그러한 주류적 논리에서 벗어나 기술개발 문제에 열성을 부었다.

애초에 「기예론(技藝論)」이라는 논문을 통해,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기예’를 통한 기술개발이 없다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없다고 여기고, 기술도입이나 기술개발을 통해서만 인류의 역사나 문화문명이 발전한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에 더하여 서양으로부터 전래된 기술개발 이론까지 합하여 기술의 도입이나 개발이 없는 국부의 증진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다산은 『경세유표』라는 저서를 통해 정부기구의 개편을 요구하고, ‘이용감(理用監)’이라는 새로운 부서를 만들어 청나라로부터 기술도입과 국내의 기술개발을 담당할 특별한 일을 하도록 해야한다고 요구했다.

다산은 농기구를 개발해야만 농민의 힘이 줄어들고 소득의 증대가 가능하고, 병기를 개발해야만 강병이 육성될 수 있으며, 의술이 개발되어야만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인간의 수명이 연장될 수 있다고 믿었다.

중화주의와 숭명사상에 빠져 청나라를 무시하면서도 그쪽에서의 기술도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을 때, 청에서라도 기술을 도입하자는 그의 북학주의는 역시 현실적이고 실리주의적인 사상에서 나타난 것이다.

더구나 기술의 개발이나 혁신에 필수적인 사항의 하나가 수학교육의 강화에 있다고 믿고 ‘산학서(算學署)’라는 기구를 개편하여 국민교육에 수학공부를 강화해야함을 역설하며 “온갖 공업기술의 정교함은 그 근본이 수리학의 연구에 있다(百工之功 皆本之於數理).”라고 주장했다.

자연과학의 근본이 수학에 있음을 다산은 이미 꿰뚫어 알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상 다산의 혁신 정신을 살펴보았다. 조선시대 학자로서 펼친 주장이지만 지금에 와서도 결코 틀린 부분이 없을 듯하다. 법제개혁, 그리고 기술개혁까지 주장한 그의 뜻을 본받아 불확실성 시대, 새로운 틀을 짜자.